조사팀은 2005년 가을 무렵, 전북 남원 근처의 88고속도로에서 덩치 큰 수컷 너구리 한 마리를 포획했다. 너구리의 활동영역과 이동 습성 등을 알기 위해 목에 전파 발신기를 채운 뒤 다시 풀어주었다. 최 연구원은 “위치감지시스템(GPS)으로 너구리의 이동경로와 위치 등을 파악해 현장을 확인했더니 암컷 한 마리가 언제나 한 몸처럼 붙어다니다시피 다니는 장면이 목격됐다”고 말했다. 가을엔 아까시나무 덤불 아래에서 함께 낮잠을 자고, 겨울엔 야산 다랑논의 논두렁에 쌓인 돌무더기 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모습이 관찰됐다. 겨울잠에 깊이 빠져들지 않고 때때로 굴 밖으로 나와 숲이나 밭 가장자리의 풀밭 등을 돌아다니기도 했다. 최 연구원은 “너구리는 음흉한 이미지로 비치지만, 일부일처제로 부부애가 강한 동물 가운데 하나”라고 말했다. 그러다 1년6개월여 흐른 지난해 3월. 조사팀은 여느 때처럼 발신기 신호음을 쫓아갔다가 냇가 둑 위에 엎어져 있는 수컷을 발견했다. 최 연구원은 “온몸의 털이 다 빠지고 피부가 문드러진 채 죽는 ‘피부모낭충’이란 전염병에 걸려 숨진 것”이라고 했다. 징후는 암컷에서도 관찰됐다. 병이 옮아 눈자위 부근의 털이 빠지기 시작한 모습이 사진에 포착됐다. 최 연구원은 “함께 겨울잠을 자면서 병든 수컷을 끝까지 지켰기 때문”이라고 했다. 조사팀은 모낭충병에 걸린 다른 너구리처럼 이 암컷도 1~2개월 뒤 죽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. |